단순히 첼로 음악을 기대하고 가서였을까,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와는 달리 감상 후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좋았다. 영화의 연출에 있어 다소 오래되었거나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단순히 영상만을 위해 보여준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장면 또한 있었지만, 전체적인 면을 봤을 때는 만족하는 편이다.

NY 타임즈의 기자 스티브는 칼럼 기사를 쓰기 위해 한 때는 촉망받던 음악가에서 현재는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한 나다니엘을 따라다니며 취재하기 시작한다. 보통 이러한 영화는 수렁에 빠져 있던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세계적인 음악가로 재 탄생시키며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주로 서술해가지만, 솔로이스트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를 바라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치료자는 치료를 강요할 권리가 있고 치료받는 측은 그것을 원하는가?' 란 평소 가질법한 의문점을 하나씩 따라가고 있다.
때로는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나다니엘을 이해 못하는 스티브, 아니 처음부터 중 후반까지 이해 하는 척을 했을 뿐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필요할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첼로를 구해주고 공연을 연결시켜주고 연습하는 공간으로 아파트를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실제 나다니엘은 거부하지만 스티브는 치료라는 명목으로 그에게 강요하고 압박한다. 이는 나다니엘의 단독 콘서트에서 보여준 분열 증세에서 극단적인 갈등을 맞이한다.
호의, 친구, 선의.. 모든 것이 좋다. 하지만 이것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이에게 강요될 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이에게 밀어붙이는 것을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영화의 결말은 나름의 해답을 제시해준다. 결국 나다니엘은 본래의 생활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각자 서로의 공간에 존재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진정한 교감이 통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이해를 '요구'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았지만, 싱크로나이즈드 되었다고 '착각'조차 버린 채 서로가 좋아하는 자리에 주저 앉음으로써 말이다.
영화에서의 '솔로이스트' 는 타인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연주하는 자를 의미하는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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