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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2   02NOV08 - 現 세대의 목표, 그리고 꿈
02NOV08 - 現 세대의 목표, 그리고 꿈
신기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연애’를 새로 시작해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 경우, 연애를 시작하면 언제나 성적은 가파른 하향곡선으로 추락했다. 어디 성적뿐인가. 매사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부모님에겐 늘 불효자가 되고 친구들에겐 ‘왕따’가 되었다.

신기한 게 또 있다.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라면 또 모르지만, 문예창작학과처럼, 예술 창작을 연마하는 학생들도 이른바 모범생 타입은 모든 교과목에서 균일하게 상위권을 유지한다. 시 창작, 소설 창작은 물론이고 희곡, 평론, 아동문학 창작 과목까지 성적에서 편차가 없다. 이것 또한 지향이나 선생에 따라 과목별 편차가 심했던 젊은 날의 나와 아주 대조적이다.

나는 때로 요즘의 ‘젊은 그들’이 부럽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 세대보다 안정적이고, 감정의 기복을 무난하게 여밀 수 있으며, 절제를 통해 ‘튀지 않고’ 사는 기술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게 있어 연애는 여전히 평화보다 ‘투쟁’에 가깝다. 사랑은 합리성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감정이어서, 한번 연애에 돌입하면, 내부에서 끊임없이 추락과 상승이 반복되고, 주관과 객관이 전도되고,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선택의 경계가 무화(無化)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공부라고 뭐 다르겠는가. 특히 창작이란 비정상적인 감정의 반응을 포착하여 그 씨앗으로 얻어내는 과실 같은 것이라서, 심리적 균형은 경우에 따라 언제든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내가 느끼는 세대차이의 기호이다.

내 젊은 날은 지향에 대한 절대적인 열망 때문에 일상에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고, 지금의 보편적 ‘젊은 그들’은 모든 걸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고 관계 맺기 때문에 균형에 따른 부가적인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젊은이는 안전가(安全價)의 주식을 사지 않는다”고 말한 장 콕토 같은 사람은 확실히 전근대적이다. 그런데 나는 때로, 지금 만나는 ‘젊은 그들’보다 한 세대 이상 먼 장 콕토를 더 가깝게 느낀다.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연애도, 창작도, 그것에 대한 절대적 지향 때문에 끝없는 내적 분열의 고통을 매일 감당해 가야 하고, 그 ‘투쟁’을 창작과 삶의 동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지닌 나 같은 사람에게, 상대성을 견지하며 비교적 균일하게 매사를 챙겨 가도록 훈련받은 안정적인 ‘젊은 그들’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의심이 많은 나는 돌아앉아 그들의 뒤꼭지에 대고 이따금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쟤네들, 연애를 진짜로 하기는 하는가? 문학을 진짜로 하기는 하는가?’


수시모집 면접 날, 운동장으로 자가용이 미어터진다.

면접시간이 다 끝나도록 캠퍼스 곳곳에 진을 친 자가용은 움직이지 않는다. 불안한 부모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시골에서 올라온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스무 살 다 된 ‘청년’들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으로 태워 오고 태워 가는 것일까. 나는 그것 역시 부럽고 신기하다. 어쩌면, 연애를 해도 성적이 절대 떨어지는 법 없고 ‘무엇’이 되고 싶으면서도 성적의 과목별 편차가 전혀 없는, 안정적 ‘젊은 그들’을 길러내는 요람이 그 풍경에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균형은 아름답고 편안하다. 그러나 젊은 날의 자기 지향을 오지게 쫓아갈 수 있는 동력은 필연적으로 불균형하게 드러나는 내적 분열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나는 아직 버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매사 상대적인 관계로써 안정감을 확보한 ‘젊은 그들’보다 여전히 내부적 불균형 때문에 불편하게 살고 있는 ‘늙은’ 내가 오히려 덜 권태롭고 덜 외롭기 때문이다. 안정감은 권태와 고독의 수렁에서 우리를 끌어올리는 힘이 없다.


연애에서의 세대 차이 - 박범신/작가·명지대 교수



지난 수요일, 무릎팍 도사를 보면서 마음속 깊이 공감했다. 지금은 삭제한 포스팅에서 성토했던 주변인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나를 위시한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길고도 거친 언어를 황석영 선생님께서는 압축된 단 한 문장으로 들려주셨던 것이다.

"가치를 정했으면 마음대로 살아라!!"

조금의 거짓말도 보탬없이 이 부분만 수 십번을 돌려보고 감동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왜 그러한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원인 모를 열병 마냥 허공에 손을 휘저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 후련한 마음과 답답한 심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오늘 이 칼럼을 읽고는 아하! 싶더니 목캔디를 녹이고난 후의 상쾌함이라 할까.. 무언가 남기고 싶어졌다.

이 칼럼에서는 '연애에서의 세대 차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이는 안정적으로 살아 가기 위해 균형을 보이는 현 세대의 모습과 한 편으로는 목표는 있되 꿈이 없는 양태를 비판하고 있다. 언젠가 한 교수의 이야기 를 예시하면서 세대차의 이해 못할 골을 의문시한 적이 있지만 요즘은 그 의문이 풀려간다. 나 또한 현 세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임에도 심정적으로는 그들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제 늦은 저녁, 제주도에서 의무 소방으로 복역하고 있는 J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와의 대화 가운데 지금 와서 별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없지만, 요즘 들어 로스쿨을 조금씩 고려하고 있다는 그의 한 마디만은 또렷하다. 그와 동시에 삼수해서 학교에 들어온 뒤 영화 감독이 되어 보고 싶다면서 여러 활동을 하던 또 다른 J-2군이 전역 직후 CPA를 준비하겠다 선언했던 옛 생각을 떠올린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현재 제주도에서 군 생활 중인 J군 또한 S대라는 목표를 이룬 후 한 때 이리저리 방황했다. 사법고시를 준비한다 하였지만 왠지 맞지 않는 Suit를 입은 듯한 기분이더니 내가 입대하기 직전인 2년 전, 부모님이 바라는 바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겠다면서 호주로 떠났던 그였다. 그당시 나는 저렇게 살아갈 수 없겠구나 싶으면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지금보다도 더 어렸던 그때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했던 그가 다시 부모님의 기대 탓을 하면서 로스쿨 이야기를 꺼내자 왠지 모르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당장 "너도 결국 그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았던 거야!!"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자격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나 또한 J군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중성이라니..

현재 세대, 아니 최소한 내 주변의 또래 집단에게 가치란 없는 듯 하다. 그들에게는 단지 목표만 존재할 뿐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목표, 주위에서 부러워 할만한 지위와 명예 또는 단지 안정적인 삶. 그러하기에 그들에게 타인의 가치관이나 사상은 그저 한번 스쳐 듣고 지나갈 만한 그러한 것이다. 그보다는 펀드에 관해서 주식 매매에 관해서 경제 수식 한 마디 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한 마디를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나 또한 아버지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는 것이다. 치열하고 끈기있게 살아가지 않는 모습만 제외하면 아버지 당신과 판박이라고 한다. 확실히 나는 당신의 아들이 맞는가 보다. (웃음) 당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하나씩 하나씩 나 또한 동일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 참..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공을 던질 때 목표 지점 뒤를 바라보고 던지게 되면 그 중간의 장애물은 가볍게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중간 목표를 향해 던지게 되면 결국 그에 못 미치거나 힘들게 도달하게 마련이다. 히카리( H2 中 )의 이야기 마냥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미리 그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황석영 선생님께서 하신 '먼저 가치를 정하라' 는 이야기는 단지 자신의 장래의 직업을 결정하라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가가 될래요 라고 외쳤던 그분은 평생에 걸쳐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리라 추측한다. 그 분에게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지..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판검사가 되고 싶다'  다들 이렇게 꿈인지 목표인지 불분명한 말을 하지만 그것이 되어 무엇이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되고 싶은 욕망의 표출만 내뿜을 따름이다.

황석영 선생님은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껏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하기에 나는 박범신 교수의 칼럼 또한 깊이 동감한다. 현 세대는 꿈이 없다. 균형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는 곧,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모르기에, 그 언젠가를 위해 이것 저것 모두 다 취사 선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상대가 진정 나의 연애 상대인지를 의심하기에 더 나은 상대가 존재하지 않을까 또 다른 기대를 하기에 그들, 아니 우리들은 흠뻑 빠져들지 못한다.

언제나 헤어질 수 있는 균형 잡힌 상태 를 유지한다...

물론 황석영 선생님 마냥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열망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그러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현 세대에게는 바로 그것이 결핍되어 있다. 어린 아이가 돈을 많이 벌어 무엇이 하고 싶다는 꿈이 아닌 단지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현 대통령 생가에 비치된 방명록에 기재하는 요즘의 모습은 벌써부터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든다.

나예리씨가 그린 '특명! 1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와 같은 만화책이 더이상 공감을 얻기 힘든 세상이 된 듯 하다.

by 빌리밥 | 2008/11/02 17:33 | 나에 대한 단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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